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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투어

"거룩하고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너희 성당을 봉헌하여라"

 

승리의 성모 성당"(Notre Dame des Victoires)

 

프랑스 파리의 승리의 성모 성당은 1629년 12월에 프랑스 왕 루이 13세의 재정적 도움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짓기 시작하였다. 루이 13세는 성모님의 도움으로 그 즈음에 왕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신축되는 그 성전을 "승리의 성모 성당"(Notre Dame des Victoires)이라고 불렀다. 


샤를르 데쥬네뜨 신부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1789-1794) 때 그 성전은 증권 거래소로 바뀌었고 1809년에 다시 성당으로 복구되었으나 그곳을 찾는 신자들은 거의 없었다. 
1832년, 샤를르 데쥬네뜨(Charles Eleonore Dufriche Desgenettes) 신부가 승리의 성모 성당으로 부임하였다. 그도 역시 사목을 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4년간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1836년 12월 3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소수의 신자들과 함께 그 신부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는데 거양성체 때 다음과 같은 내적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거룩하고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너희 성당을 봉헌하여라." 그리고 미사가 끝난 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도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또다시 분명히 듣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그에게 내려진 천상 메시지였다.

 

승리의 성모 성당 봉헌과 성모회 

 

그는 어떠한 의심도 없이 그 명령을 받아들였고, 파리 대주교의 허락 하에 1836년 12월 11일 주일 저녁에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승리의 성모 성당을 봉헌하였다. 그날 저녁 데쥬네뜨 신부는 봉헌식을 위하여 성전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주일 미사에 40명도 채 참례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500명 이상의 신자들이 동참했던 것이다. 데쥬네뜨 신부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열렬한 마음으로 봉헌식을 한 뒤 그날 바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거룩하고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회"(Association of the Holy and Immaculate Heart of Mary for the conversion of sinners)를 설립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8년 이 신심회를 인준하였는데 "성모 신심회", 흔히 "성모회"로 불리는 바로 그 신심 단체이다.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의 힘

 

그때 이후로 수많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승리의 성모 성당을 찾았고 순례자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순례자들 중에는 돈 보스코 성인을 비롯하여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데레사 성녀는 승리의 성모께 9일 기도를 드린 뒤 질병을 치유받은 직후인 1887년 11월 4일 그곳을 방문했었기에 그 감회는 남다른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 아버지께서는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내 관심은 오직 승리의 성모 성당이었습니다. 거룩한 그곳에서 느낀 것은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때 성모님이 내게 주신 은총은 첫영성체 때의 그것과 흡사했습니다. 나는 평화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내 병을 고쳐 준 이가 바로 당신이었노라고 명확히 말씀해주신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나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항상 나를 보호하고 나의 꿈을 이루어주고 당신의 동정의 망토 아래 영원히 나를 감싸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짓는 기회를 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성모님께 간청하였습니다." 


데쥬네뜨 신부가 그곳에서 재임한 시기(1832-1860)에 37,000명 이상의 신자들이 그 회의 정신을 따를 것을 서약하였으며, 마리아께 대한 감사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성모회는 전 세계에 널리 전해져 있는데, 성모회의 목적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공경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그들을 봉헌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매달 첫토요일 미사에 참례하여 교황의 지향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장한다.

 

우리나라의 성모회 설립

 

우리나라에서는 1846년 11월 2일 공주 수리치골에서 페레올(Ferreol) 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가 성모회를 설립했다. 즉 그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1841년 조선 교구의 주보로 정해진 것과,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 호를 타고 위험한 여행을 하면서 마리아께 의지하고 보호를 받았던 일을 상기하면서 마리아께 감사를 표시하고, 극심한 박해를 피해 마리아의 보호 아래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국에서 최초로 성모회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보다 앞서 최양업(토마스) 신부도 신학생 시절 스승 리브와(N. Libois) 신부를 통해 성모회에 가입할 의사를 밝혀 리브와 신부는 1843년 6월에 데쥬네뜨 신부에게 그 가입을 청원하였다고 한다.

 

1836년의 의의

 

이상에서 보았듯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성심께 의탁하고 그 성심을 통했을 때 우리의 가능성을 벗어나는 "큰일"(루카 1, 49)들이 얼마든지 가능해짐을 본다. 마리아께서는 포르투갈 파티마에 여러 번 발현하시어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의 위력을 여러 번 언급하셨다. 또한 파티마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 중 한 명인 히야친타는 마리아와 몇 번에 걸친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언니 루치아에게 이런 유언으로 남기기까지 하였다. 


"난 얼마 안 있어 천국에 가게 되겠지만 언니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대한 신심이 이룩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여기 남아있어야 해. 언니가 이 말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숨기지 말아야 해. 하느님께서는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줘.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은총을 받기 위해 성모님께 간청해야 한다는 것도. 또 예수님께서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이 당신 성심 곁에서 나란히 존경받기를 원하신다는 것도 꼭 전해줘. 또한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성모님께 맡기셨기 때문에 평화를 위하여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항상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도 말해줘. 만일 내가 내 안에서 타오르면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너무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이 불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넣어줄 수만 있다면……." 


한편 1836년 데쥬네뜨 신부가 들은 그 천상 메시지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가 그것이다. 이 교의는 1854년이 되어서야 믿을 교리로 확정되었고,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마리아의 입을 통해 다시금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미 20여 년 전에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원죄 없는 잉태와 성심, 그리고 성심께 봉헌하기를 명하셨고 그 성심의 전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을 보여주셨다. 이 21세기에도 마리아의 성심은 19세기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를 향해 계신다. "…은총을 주고 싶어도 많은 사람이 청하지 않기 때문에 은총을 받지 못한다."(1830년 11월 27일, 프랑스 파리의 발현에서)라는 슬픔을 오늘도 여전히 지니신 채.

※ 위 내용은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 한국 본부에서 운영하는 아베 마리아 출판사 사이트에서 발췌하여 옮겼으며 사진은 www.pinterest.com에서 검색을 통하여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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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 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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