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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투어

노크의 성모님

마리아투어 2016.01.19 21:49 조회 수 : 589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영국령)로 구성되어 있는 아일랜드는 파트리치오(Patricius, 389?-493년) 성인이 그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튼튼하게 심고 복음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파트리치오 성인은 435년 3월에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40여 년 동안 아일랜드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는데 그 결과 아일랜드는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6-7세기에 아일랜드에는 수도원이 많이 생겨나 수도원은 유럽의 학문, 예술,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인접해 있는 영국이 계속적으로 아일랜드를 침입하여 전쟁을 일삼고 지배를 꾀하면서 아일랜드는 고통과 치욕의 역사를 거치게 되었다. 성모님께서 노크(Knock)를 방문하신 즈음도 아일랜드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1879년 아일랜드의 시대 상황

아일랜드와 영국의 숙명적 관계는 116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해 영국의 헨리 2세는 병력을 급파하여 아일랜드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는 영국 왕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1558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열성적인 프로테스탄트 신봉자로서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심하게 탄압했다. 이미 5세기에 파트리치오 성인에 의해 가톨릭 전통이 굳건해진 아일랜드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개입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적 갈등을 심각한 상태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신구교의 갈등과 분쟁은 17세기에 영국에서 있었던 청교도 전쟁의 영향을 받아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종교적 분쟁 뿐 아니라 영국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은 아일랜드의 고통을 더 가중시켰다.

 
한편 1800년대 들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아일랜드인의 주식인 감자의 수요도 그만큼 늘어갔다. 그런데 1847-1851년 사이에 감자 수확이 계속적으로 실패하면서 엄청난 기근이 발생했다. 그 결과 당시 200만 명 이상이 아일랜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으며 아일랜드인들의 생활은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성모님께서 아일랜드의 노크(Knock)를 노크(knock)하셨다.

노크(Knock)를 노크(knock)하신 성모님 

아일랜드 메이요(Mayo) 군의 작은 마을인 노크(Knock)에 성모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1879년 8월 21일 목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 8시경 메리 맥로그린(Mary Mcloughlin)과 메리 베이른(Mary Beirne)은 성당의 남쪽으로 향한 문 앞에서 빛이 비치고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오, 저 동상들 좀 봐!" 하고 베이른이 외쳤다. 두 사람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베이른이 다시금 소리쳤다. "동상이 아니야. 움직이고 있어. 성모님이야!" 그곳에는 성모님 뿐 아니라 요셉 성인과 복음사가 요한 성인이 함께 있었다. 성모님은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크고 반짝이는 왕관을 쓰고 계셨다. 두 손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들고 계셨다. 두 목격자는 이 아름다운 분이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천사들의 모후 이심을 즉시 알아볼 수 있었다. 성모님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요셉 성인은 기도하는 듯, 성모님께 공경을 표하는 듯 성모님을 향해 머리를 약간 숙이고 계셨다.

왼편에 서 계시는 복음사가 요한 성인은 주교 복장을 하고서 왼손으로는 책을 들고 오른손은 강론을 하는 것처럼 위로 올리고 있었다. 요한 사도의 왼편에는 제대가 있었으며 제대 위에는 십자가와 어린양이 있었다. 그리고 아 밝은 빛이 이 광경의 주위를 온통 덮고 있었다. 성모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떠한 요청이나 경고도 하지 않으셨다. 


베이른은 어머니와 오빠를 부르려고 집으로 뛰어갔으며 그러는 사이 소문이 퍼져 다른 사람들도 구경하러 나왔다. 모두 열네 명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패트릭 월시는 바로 그곳에는 없었지만 성당에서 약 8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자기 집에서 성당 남쪽 문 앞에 크고 둥근 황금빛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의 연령을 보면 6세의 요한 쿠리로부터 75세의 브리짓 트렌치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이 발현은 약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천상에서 오신 분들은 지상의 빗방울에 조금도 젖지 않았다.

노크(Knock) 발현의 의미

노크 발현은 성모님의 다른 발현들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대개 성모님이 혼자 발현하신 것과는 달리 노크에서는 요셉 성인과 요한 사도가 함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더욱이 어린양, 십자가, 그리고 제대의 등장은 노크 발현만의 특징이다. 


둘째, 말씀의 메시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성모님은 발현 때마다 요청이나 경고의 뜻을 반드시 전달하셨다. 1871년 프랑스 퐁멩에서도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띠에 글자를 새겨 발현의 목적을 전하셨다. 하지만 노크에서는 오직 상징 뒤에 숨은 뜻을 읽어야만 했다. 


셋째, 발현이 매우 간단 했다는 점이다. 이 발현은 단 한 번, 약 두 시간 동안에만 일어났다. 그러기에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넷째, 발현 목격자의 수가 한두 명 혹은 서너 명이 아닌 열다섯 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의 증언은 완전히 일치했다.


1880년 가을에 노크의 성모 성상이 발현 지점에 세워졌으며 발현 이후 그곳은 매년 150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성모님의 발현이 있은 직후부터 치유 기적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교회에 보고되었으며 결국에는 노크의 대성전 내에 의학부가 설립되었다. 


노크의 발현에 대해 우리 교회의 수장인 교황들도 관심과 경의를 표했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5년 모든 성인 대축일에 노크의 깃발을 축복하고 그것을 특별한 메달로써 장식하였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0년 주님 봉헌 축일에 노크에 특별한 초를 선물하였으며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노크에 관심을 기울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6월 6일 아일랜드의 모후이신 마리아 대성전에 놓일 머릿돌을 손수 축복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 9월 30일에 노크를 직접 방문하여 순례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그곳을 대성전으로 격상시켰으며 초와 금장미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발현 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러면 성모님이 노크에 발현하신 참뜻은 무엇일까? 성모님의 발현은 언제나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음을 볼 때 그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유럽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기초한 사조가 만연되면서 그리스도교적 영성이나 신앙은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하느님과 교회를 떠나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수 세기에 걸친 시련과 박해를 잘 견디고 있었으며, 1847년부터 시작된 감자 흉작은 특히 1877년부터 1879년 사이에는 매우 극심한 기근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아일랜드인들의 신앙은 변함없이 충실하게 지속되었다.
그런 점에서 알라트 로얀느 신부는 노크의 발현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성모님은 라 살레트와 루르드에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었던 여러 가지 죄악에 대해 꾸중하시고 회개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노크에 발현하신 목적은 꾸중이나 회개의 촉구가 아니라 신앙에 충실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동정을 표시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위험과 그에 따르는 기도의 필요성을 권고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노크의 발현은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패트릭 오캐럴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노크의 발현에 대해 묵상해보면 우리는 결국 우리를 위해 갈바리아 산에서 죽음을 당했으며 그 고귀한 피로 우리 영혼을 씻어주는 하느님의 어린양에게 가 닿는다. 동시에 미사 때마다 제대 위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하느님의 어린양, 갈바리아 산에서 바쳐진 바로 그 어린 양에게로 가 닿는다. 그래서 노크의 발현은 미사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인식을 촉구한다."

 
이상과 같이 노크의 어머니, 아일랜드의 모후이신 성모님은 비참함과 고통의 도가니에서 울부짖는 아일랜드에 희망을 주시려고 오셨고,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 7)라고 약속하신 당신 아드님에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이들을 위하여 믿음을 주시려 오셨으며, 질병과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셨다. 성모님은 우리들이 미사에 깃든 참뜻과 은총을 알기를 원하셨고,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의 여정에 있는 지상의 나그네이기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깨우쳐 주기 위해 오셨다.

※ 위 내용은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 한국 본부에서 운영하는 아베 마리아 출판사 사이트에서 발췌하여 옮겼으며 사진은 www.pinterest.com에서 검색을 통하여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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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 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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