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Assisi)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흔히들 예수님의 생애와 가장 비슷한 삶은 산 성인을 말할 때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말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 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큰 포목상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젊은 시절은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기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페루지아와의 전투에 참여하여 포로로 지내게 되었고, 풀려나서도 많이 아프게 되었다. 이후 심경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곳 십자가(다미아노 십자가 – 현재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글라라 성당으로 옮겨졌음)를 통해서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새롭게 해라.”라는 말이 들은 그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성당 보수를 시작하였다. 그의 행동에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아시시의 주교에게 데리고 가서 모든 상속권이며 모든 것을 받으려고 하였을 때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주면서 “나는 이제까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분은 나의 모든 부이므로 나의 모든 신뢰를 그분께 둡니다.”라고 말하면서 청빈을 모토로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관심을 쏟고 살았다. 이후 프란치스코의 생활에 감화를 받은 12 명의 제자들은 그 당시 교황 인노센트 3세에게 수도원 인준을 청원하여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의 수도원으로 인준을 받았다. 그를 따르는 형제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였고, 분원을 마련하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여제자들을 위하여 제2회 클라라회를 설립하였고, 또한 세속에 살면서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재속 3회를 설립하였다. 1224년 9월 14일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님과 같은 오상을 받게 되어 그 후 2년뒤인 1226 년 10월 3일, 뽀르지웅꼴라의 수도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

프란치스코 성당은 당시 “지옥의 언덕이후 천국의 언덕이라고
불리게 됨”이라고 불리우는 아시시의 서쪽 언덕에 세워진 성당으로 시에나 대성당과 같은 시대에 세워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시시의 대성당의 설계자는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인 엘리아 형제에 의해 건축되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지하 무덤과 1층 성당, 2층 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위에 1층 중앙제대와, 그 위의 2층 중앙제대가 있다.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면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 사이의 야고바 부인의 유해함이 있고, 몇 계단을 더 내려가면 중앙에 기둥내의 석관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이고 그 옆을 모퉁이에는 네 명의형제가 묻혀 있는데 그든은 레오, 마쎄오, 루피노, 안젤로 형제들이다. 대성당의 1층을 들어가면 성 마르띠노 소성당, 성녀 막달레나 소성당, 성모 마리아와 성 프란츠시코의 벽화, 그리고 중앙 제대와 아치형 천장이 있고, 석양의 성모가 있다. 대성당의 2층은 1층 성당과는 달리 매우 환하면서도 잘 정리된 짧은 중앙복도로 되어 있다. 2층은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지오또의 작품으로 그려져 있다. 그 중의 한 작품인 새들에게 한 설교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 것은 유물 소 성당인데, 이곳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수도복과 성인이 부제시절 성찬 전례 때에 사용되었던 성작과 이집트의 술탄에게 받았던 “상아로 만든 피리”등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사용하셨던 물건이 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Papal Basilica of Saint Mary of the Angels in Assisi)

아시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금장으로 된 성모님께서 성당 지붕에 모셔져 있는데 이 성당이 바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성당 안에 작은 성당인 '뽀르치운꼴라(Porzinuncula)'가 있다. 이 소 성당은 성 프란치스코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며 초기 동료들, 작은 형제회의 삶에 있어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리고 뽀리치운꼴라의 뒤쪽 오른편에는 작은 경당에서 성인께서는 돌아가신 곳이다. 이 경당에는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의 토기 작품인 성 프란치스코가 있다. 이곳 외에도 다른 경당들은 벽화와 유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성 안토니오 경당, 오상 경당과 세례자 요한 경당, 성 디에고 경당, 성 안나 경당, 구유 경당, 알깐따라의 성 베드로 경당 등이 있다.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장미밭으로 가는 통로를 지나면 작은 장미밭이 창 너머로 보인다. 이곳은 성인께서 강한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가시덤불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던 곳이다. 그 이후 이 장미밭에는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란다고 한다. 장미밭을 지나면 '장미 경당'이 있는데 이 곳은 성인께서 포르치운꼴라에 돌아왔을 때 보통 머물던 움막이라고 한다. 성인을 여기서 쉬었고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고 한다.


 


성녀 클라라 대성당 (Basilica di Santa Chiara)

성녀 클라라 대성당은 1257 년에 짓기 시작하여 1850 년에 만든 것이다. 이 곳은 성녀 클라라께서 이곳에 묻혀 계신 곳이다. 그리고 이 곳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말씀을 들려주었던 그 십자가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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