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적의 메달 성당

이 성당에는 성 빈첸시오 동상과 성모님께서 1830년 7월 18일, 11월 27일, 12월 말 까리따스 수녀원의 카타리나 수녀에게 발현한 장면의 조각이 있다. 이 조각에 있는 성모님의 머리에는 별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메달을 착용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 메달의 착용으로 많은 기적과 치유가 있었다. 그 이후 교황님의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성당에는 성녀 카타리나의 유해가 남아있다.


 


노틀담 성당

성모님께 봉헌된 중세 고딕양식 대표적인 성당이다. 이 성당은 세느강 시테섬에 있는 곳으로 노틀담 대성당을 들어서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정면에 구약의 왕 12 지파와 성 안나 등이 조각되어 있고 중세의 타락상이 표현되어 있다.


 


루르드

루르드의 성모(프랑스어: Notre Dame de Lourdes)는 18회에 걸쳐 나타났다고 보고된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당시 14살 소녀였던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처음으로 발현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여동생과 친구와 같이 땔나무를 모으던 중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마사비엘 동굴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부인'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3일 후, 베르나데트는 다른 두 명의 소녀와 같이 동굴을 다시 찾았는데, 두 소녀는 베르나데트가 탈혼 상태에 빠진 것에 놀라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2 월 18 일, 그녀는 부인에게서 “너는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이 동굴에 오너라.”라는 말을 들었다. 부인은 이어서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 하마.”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2 월 25 일, 부인은 작은 흙탕물을 가리키며 베르나데트에게 가서 마신 다음에 씻으라고 지시했다. 베르나데트는 부인이 지시한 대로 손으로 땅을 깊이 파헤친 후 그 물을 마시고 목욕하였다. 그러자 깨끗한 샘물이 갑자기 엄청난 양으로 나왔다. 이 소식이 방방곡곡에 알려지면서,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환자들이 대거 몰려와 이 샘물을 마시거나 몸에 뿌렸다. 그 후, 많은 기적 치료가 보고되었다. 그들 가운데 7명은 1860년 베르게 교수에 의해 어떠한 의학적 설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샘물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된 것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환자는 사고 후 오른손이 기형으로 변한 여성이었다. 군중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루르드를 점차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동굴을 울타리로 막고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다음 누구라도 이곳에 접근하는 자는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루르드는 어느새 프랑스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동굴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개입으로 1858년 10월 4일에 다시 일반에 개장되었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교회는 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로 하였다. 3월 25일, 밤중에 베르나데트는 어둠을 틈타 동굴에 겨우 도착하였다. 동굴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가브 강가에 무릎을 꿇고 동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베르나데트는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부인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부인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네 번째 물음에 그녀는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는 부인의 대답을 들었다. 4월 7일 일요일 부활절 날, 베르나데트를 관찰한 의사는 그녀가 탈혼 상태에 빠졌을 때, 촛불에 손을 뻗었는데도 화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7월 16일, 베르나데트는 동굴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부인의 미소를 보고 감탄한 그녀는 나중에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 동안,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교회는 전국적인 질문들에 직면하자, 1858 년 11월 17일에 로어드(Lourde)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였다. 1860년 1월 18일, 지역 교구장은 “동정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발표하였다.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사후 성녀로 시성되었으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당시 그녀가 성모 마리아를 본 것이라고 믿고 있다. 1862년 교황 비오 9세는 그 지역 주교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루르드의 성모를 공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예수 성심 성당

1910년에 몽마르뜨 언덕의 정상에 지어진 이 예수성심 성당은 몽마르트 성당이라고도 한다. 파리 최초의 주교인 디오니시오 성인(St-Denis-쌩드니)이 이 언덕 밑에서 순교한 이래 이곳은 순교자들의 산이란 뜻으로 몽데 마르띠르(Mont des Martyrs)라고 불리다가 차츰 변형되어 몽마르뜨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통용되게 되었다고 한다. 몽마르뜨르 언덕의 정상에 위엄있게 서 있는 이 예수성심 성당은 인상적인 조각, 그림, 모자이크 장식 등이 참으로 정교하며, 천정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성당에는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성체가 현시되어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 사업을 위하여 1658년 창설되었고, 1664 년 교황님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 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고 동양 전교지방의 성물과 활동상황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